• 어우러지다

    평범한 청년이 독립운동가가 되기까지

    <안중근 書>에 다녀와서

한국어를 잘 이해하려면 한자를 잘 익혀야 한다고 들었다. 외국인 역시 한자를 잘 알아야 한국의 역사와 사회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書)라는 대주제 아래 그의 인생(生), 의로움(義), 생각(思)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녀왔다.

글·사진 | 수잔 샤키야 작가 겸 방송인

  • 평범한 청년이
    독립운동가가 되기까지

  • 안중근 의사의 뿌리를 조망하는 인생(生) 부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토마스(Thomas)라는 세례명을 받은 천주교 신자라는 점이었다. 그의 호 ‘도마’는 세례명 토마스를 한국식으로 바꾼 것인데, 그의 신앙심에 대해서는 그동안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절개가 신앙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놀랍고 흥미로웠다. 특히 ‘Corée An Thomas’라는 인장은 한국, 안(성씨), 도마(세례명)라는 본인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불교 용어 ‘극락(極樂)’을 마주하였을 때는, 안중근 의사가 종교를 뛰어넘어 마음의 평화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것 같아 반가웠고, 불교를 생활화하고 있는 네팔인에게도 직관적으로 와 닿아 기억에 남았다.

    안중근 의사의 영적인 세계를 살핀 뒤, 의(義) 섹션으로 넘어갔다.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국어 설명이 낯설어 먼저 영어로 읽었다. I belabor my heart and brood anxiously over ournation's security.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갑자기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 인물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다니?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배웠어도, 본인 자신이 아닌 나라의 앞날부터 걱정하는 이 남자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맞다, 독립운동가지. 안중근이란 인물이 비로소 나라의 안위와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청년으로 내게 걸어 들어왔다. 나 자신이 모르는 것을 남들 앞에서 쉽게 인정하기란 어려운데, 민이호학 불치하문(敏而好學 不恥下問, 민첩하고 배움을 좋아하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이라니, 도대체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독립을 위해 하루하루 견뎠을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고, 이러한 절개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새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기도 했다.

    다섯 번째 이야기 ‘동지’에서는 동지가 과연 무엇인 걸까 단어의 개념부터 생각했다. 작품 하나하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가 동지 11명과 손가락을 절단하며 맹세하고 ‘동의단지회’를 결성한 일화는 외국인에게도 유명하다. 독립(獨立)이라는 두 글자에 “천국에 가서도 반드시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는 유언에서 그의 독립 염원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서예에도 뛰어나 많은 작품을 남긴 그의 업적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동아시아의 앞날을 염려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돋보였다.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된 뒤, 뤼순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그는 초연했다. 일곱번째 이야기 ‘평화’라는 제목처럼 그는 내면의 평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에 응하여 태어난 응칠(應七)은 교육자로서, 군인으로서, 사상가로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다가 마침내 죽음으로서 그 과업을 마친 것이다. 그의 초연하고 담담한, 더없이 깨끗한 얼굴에서, 잘린 손가락의 절박함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네팔에도 독립을 지켜낸 전사들이 있다. 네팔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구르카’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과 함께 나치를 물리친 군대이자 세계 최고의 용병이다. ‘겁쟁이가 될 바에는 죽는 게 낫다(Better to die than be acoward)’는 그들의 모토는 구르카 용병 부대를 한마디로 설명한다. 구르카가 유명해진 건 네팔-영국 전쟁(1814~1816)때부터다. 구르카는 네팔이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냈다. 영국을 상대로 독립을 지켜낸 것은 네팔 사람들에게 큰 자부심이다.

    나는 구르카가 멋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군대에 가겠다는 생각같은 건 해 본 적이 없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구르카 민족의 체트리(무사)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네팔은 구르카 민족이 지키는 나라다. 다른 민족 사람들은 군인이 되고 싶어도 복무를 할 수 없다. 네팔이 왕국이었을 때부터 쭉 그래왔다.

    네팔은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아서 독립운동의 진정한 가치나 독립운동 열사의 숭고함을 가슴 깊이 내면화할 수는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안중근 의사에 대한 뮤지컬이나 영화, 전시 등의 콘텐츠를 만들어서 기억하려는 이유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콘텐츠들을 접할수록 결사코 나라를 지켜낸 노력과 긍지가 더욱 와닿고,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위상은 이러한 인물들의 절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자주 깨닫는다.

    <안중근 書>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유익한 전시였다. 여러 문화콘텐츠를 통해 파편적으로 접한 상징적인 인물로서가 아닌 한 편의 자서전, 일기장을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 Sujan Shakya / 수잔 샤키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나고 자랐다. 단국대학교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한국에 15년째 거주 중이다. 2014년부터 종영 때까지 JTBC <비정상회담>에서 네팔대표로 참여했고, 현재는 한국 방산업체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국 사회 이주민 대표를 꿈꾸며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다양성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통번역, 강연 등 새로운 일들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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