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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영화와 음악의 밤 전단
자료형태 전단/홍보물 시대/연도 일제강점기(1910~1945)
규격 1)39.0×26.8 2)38.8×17.9
한줄설명 재만피란조선동포를 위한 ‘우리영화와 음악의 밤’ 행사 홍보 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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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일본은 침략 야욕을 드러내며 중국대륙 진출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결국 일본은 1931년 만주에서 만주사변을 일으킨다. ‘만주사변은 일제가 만주로 영역을 넓히고자 침략의 구실로 삼기위해 고의적으로 류타오후(柳條溝) 사건을 일으키고 이를 빌미로 만주 지역을 침공한 사건이다. 만주는 1860년대부터 상당수의 한국인이 이주하여 생활 터전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망명하여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1931년 만주사변이 발생하면서 만주에 거주하고 있던 한인들은 많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자료는 일본 도쿄(東京) 혼조공회당(本所公會堂)에서 열린 우리영화와 음악의 밤(우리映畵音樂의 밤)’ 전단으로 재일동포들의 모임인 '재만피란조선동포구제회'에서 재만동포들을 위해 마련한 기금 모금 행사를 홍보하고자 제작한 것이다. 이 자료에는 1212, 13일이라는 개최일은 있지만 명확한 연도가 기재되어있지 않은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른 자료 중 재만피란조선동포구제회 취지서에 나타난 우리영화와 음악의 밤행사 소개와 ’1932(쇼와 7) 1월까지 모금을 받겠다는 문구를 통해 우리영화와 음악의 밤행사는 만주사변이 발발한 당해인 1931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료는 총 2점으로 2점은 거의 동일한 내용이며, 1점은 하단에 상점 광고 부분이 잘려나간 형태이며, ‘재만피란조선동포구제회의 주소 東京市 銀座 六(交詢ビル)’ 와 전화번호 電話 銀座 (51) 四五二一番가 스탬프로 찍혀있다. 전단의 앞면에는 제목, 취지문, 일시, 장소, 주최, 프로그램 순서에 관한 정보 등이 인쇄되었다. 프로그램은 독창, 합주, 피아노 독주, 바이올린 합주 등의 음악 공연과 을 건너서’, ‘아리랑두 편의 영화 관람으로 구성되었다. 2점의 전단을 비교했을 때 특별 출연 독창 등 공연이 추가되어 추후 추가로 출연자가 섭외되어 프로그램 구성이 늘어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단에서 상영 영화로 소개한 영화 두 편이 눈에 띄는데, ‘아리랑저 강을 건너서는 한국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운규 감독이 제작한 작품들이다. 이중 을 건너서는 나운규 감독이 만주를 배경으로 간도에 사는 한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나타내고자 제작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두만강을 건너서였으나 한국에서 개봉될 당시에는 일제의 검열로 사랑을 찾아서로 제목이 바뀌어서 개봉되었는데, 이 전단에서는 을 건너서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단의 우측에는 기금 모금 행사를 여는 취지의 글이 실려 있다. “현 만주사변의 확대와 한가지로 () 생활근저(生活根底)는 여지없이 파괴당하였으며 동시 학살 방화 약탈을 무참히도 감행하였다. () 그리하야 팔십만 동포의 남은 것은 오직 기아와 황폐에서 신음하는 울음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처럼 학살과 기아에 고통받는 팔십만 만주동포를 돕자며 행사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어 당시 만주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짐작해볼 수 있다.

 

참고자료

박환, 『사진으로 보는 만주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 민속원, 2016.

서재길, 『나운규 영화와 만주 - <사랑을 차저서>를 중심으로』, 『인문연구』70,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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